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니스 코트의 맹세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'[[정구]]장의 서약', '[[테니스]] 코트의 서약', '죄드폼의 맹세'라고도 한다. 정확히 말하면 테니스가 아니라 '''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죄드폼|죄드폼]]'''이라는 약간 다른 스포츠의 구장이나, 친숙하지 않은 스포츠인 탓에 [[테니스]]로 의역하여 널리 쓰이고 있다. 오역은 아닌데, 현대의 [[테니스]]는 [[17세기]]부터 존재하던 죄드폼과 랑그폼 등의 유럽 [[민속놀이]] 규칙을 하나로 통일, 규격화하면서 탄생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.[* 죄드폼과 랑그폼의 차이는 [[럭비 유니온]]과 [[럭비 리그]]의 차이 내지는 [[축구]](soccer)와 [[미식축구]], [[오스트레일리안 풋볼]] 등의 차이와도 같다.] 1789년 5월에 개최된 [[삼부회]]에서 평민계급 의원들은 계급별 투표에 반대하며[* 계급별 투표는 말 그대로 계급당 한 표를 주는 것인데 문제는 제1계급인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이 쿵짝이 잘 맞아서 제3계급인 평민에게는 불리하다는 것.] 삼부회의 [[영국]]식 의회 개편과 [[헌법]] 제정 등을 주장했고, 귀족, 성직자 계급 의원들과 협상을 벌였다. 그러나 대다수의 귀족, 성직자 계급 의원들은 이에 반대했다. 6월 19일, 평민계급 의원들은 [[라파예트 후작 질베르 뒤 모티에|라파예트]][* [[미국 독립 전쟁]]에 참가한 그 라파예트다. [[프랑스 혁명]] 전부터 [[자유주의]]와 [[민주주의]]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.], [[오노레 가브리엘 리케|미라보 백작]], [[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|시에예스]] 신부 등의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 계급 의원들이 평민계급의 주장에 동조함[* 하단부에 세명이 모여있는 모습이 이 장면을 상징한다. 좌측이 1신분인 성직자, 우측이 2신분인 귀족을 대표하는 라파예트, 중앙이 제3신분 부르주아이다.]에 따라 단독으로 삼부회를 국민의회로 전환하기로 결정한다. 그러나 이에 대해 [[루이 16세]]가 국민의회를 반대하여 군대를 동원해 삼부회 회의장을 폐쇄하고 국민의회를 해산하려 들었다. 이에 맞서 평민계급 의원들과 국민의회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므늬 플레지르 궁의 [[테니스]] 코트로 가서 대응책을 논의했다. 논의 과정에서 [[혁명]]을 일으키자는 등의 과격한 주장들도 있었으나 결국 "[[헌법]]이 제정될 때까지 국민의회는 물러서지 않겠다"라고 선언하고 초대 의장으로 천문학자인 장 실뱅 바이이를 선출하게 된다. 이 사건 이후 대세는 국민의회 쪽으로 기울게 되었고 결국 루이 16세는 어쩔 수 없이 국민의회를 인정하고 헌법제정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용인하게 된다. 하지만 그 과정에서 루이 16세는 [[프랑스군]]을 [[파리(프랑스)|파리]]로 보내게 되고, [[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|결국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었으니]]..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